
동아 고등 한국사 2
Ⅰ. 일제 식민 통치와 민족 운동
5. 일제 침략 전쟁과 광복을 위한 노력
핵심 내용 정리
1) 1930년대 이후 일제의 침략 전쟁과 병참 기지화
- 배경: 대공황(1929) 극복 위해 일본, 독일, 이탈리아에서 전체주의 등장.
- 침략 전쟁 확대: 만주 사변(1931) → 중·일 전쟁(1937) → 아시아·태평양 전쟁(1941) (일본의 진주만 기습).
- 경제 수탈 (병참 기지화): 한반도를 군수 물자 보급 기지로 삼음 (군수 산업 위주 재편). 국가 총동원법(1938) 제정.
- 인적 수탈: 지원병제(1938), 국민 징용령(1939) (노동력 강제 동원), 학도 지원병제(1943), 징병제(1944), 여자 정신 근로령(1944),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 물적 수탈: 식량 배급제 및 공출 (쌀), 금속류 공출 (놋그릇, 수저 등), 송진 채취.
2) 민족 말살 통치 (황국 신민화 정책)
- 목적: 한국인을 일본의 침략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민족의식을 말살하려 함.
- 이념: 내선일체(일본과 조선은 하나), 일선동조론(일본과 조선의 조상은 같다) 주장.
- 생활 통제: 황국 신민 서사 암송 강요, 신사 참배 및 궁성요배(일왕 궁궐 향해 절) 강요.
- 언어/교육: 소학교 명칭을 국민학교(‘황국 신민 학교’의 줄임말)로 변경(1941). 학교에서 한국어 사용 금지, 조선어 과목 폐지. 『조선일보』·『동아일보』 등 한글 신문 폐간. 조선어 학회 사건(1942)으로 한글 연구가 탄압됨.
- 성명: 일본식 성명 강요 (창씨개명, 1940). 거부 시 배급 중단, 입학 불허 등 불이익.
3) 1930년대 만주 지역의 무장 투쟁
- 배경: 만주 사변(1931) 이후 중국군의 반일 감정이 높아져 한·중 연합 작전 전개.
- 북만주: 한국 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 중국군과 연합하여 쌍성보, 대전자령 전투 등에서 승리.
- 남만주: 조선 혁명군 (총사령관: 양세봉). 중국군과 연합하여 영릉가, 흥경성 전투 등에서 승리.
- 만주 (기타): 동북 항일 연군(한국인 사회주의자 참여). 조국 광복회 결성 → 국내 진입 작전 (보천보 전투, 1937).
4) 중국 관내 및 국내외 독립운동
- 대한민국 임시 정부 (충칭 정착):
- 정당: 한국 독립당 창당 (김구 중심).
- 군대: 한국광복군 창설 (1940, 총사령관 지청천). (김원봉의 조선의용대 일부 합류, 1942).
- 이념: 대한민국 건국 강령 발표 (1941). 조소앙의 삼균주의(정치·경제·교육의 균등)를 바탕으로 함.
- 활동: 대일 선전 포고 (1941). 연합군과 공동 작전(인도, 미얀마). 미국 OSS와 국내 진공 작전 계획.
- 중국 관내 (민족 유일당): 조선 민족혁명당 창당 (1935, 김원봉 중심). 산하에 조선의용대 창설(1938).
- 중국 관내 (화북): 조선 독립 동맹 결성 (1942, 김두봉). 산하 군사 조직으로 조선의용군 편성.
- 국내: 조선 건국 동맹 결성 (1944, 여운형 중심). (광복 대비 비밀 결사)
- 미주: 재미 한족 연합 위원회. 임시 정부 후원 및 외교 활동.
5) 광복과 연합국의 약속
- 국제 회담:
- 카이로 회담 (1943): 미국, 영국, 중국 정상이 모여 ‘적절한 시기(in due course)’에 한국의 독립을 최초로 약속.
- 얄타 회담 (1945): 소련의 대일 참전 결정.
- 포츠담 선언 (1945): 카이로 선언의 이행을 재확인.
- 광복: 미국의 원자 폭탄 투하(히로시마, 나가사키), 소련의 대일 참전 →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광복 맞이.
스토리텔링
전쟁의 광기, 그리고 꺼지지 않은 희망
1931년 ____, 1937년 ____, 그리고 1941년 ____까지, 일제는 전쟁의 광기에 휩싸였습니다. 이들은 한반도를 전쟁 물자 공급 기지로 만드는 ‘____‘ 정책을 추진했고, 1938년에는 ____을 만들어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기 시작했습니다.
청년들은 ____되어 총알받이가 되었고, ____으로 탄광에 끌려갔습니다. 여성들마저 ____이나 ____로 끌고 가는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질렀죠. 밥그릇과 숟가락까지 ____이라는 이름으로 빼앗아 갔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민족 말살 통치’였습니다. ‘____‘를 외치며 우리 민족의 혼을 빼앗으려 했죠. 학생들에게 ____를 외우게 하고, ____를 강요했습니다. 1940년부터는 ____을 강요하며 우리말과 글을 금지했고, 한글을 연구하던 ____ 회원들을 투옥시켰습니다.
하지만 이 암흑 속에서도 독립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만주에서는 ____ 작전이 펼쳐졌습니다. 북만주에서는 ____ 장군이 이끄는 ____이 ____에서, 남만주에서는 ____ 장군이 이끄는 ____이 ____에서 일본군을 격파했습니다.
중국 관내로 이동한 독립운동가들은 새로운 희망을 모았습니다. 1935년 ____을 중심으로 좌우익이 힘을 합친 ____이 탄생했고, 그 산하에 ____가 창설되었습니다. ____에 정착한 ____는 ____ 주석을 중심으로 1940년 정규군인 ____을 창설하고, ____를 하였습니다. ____의 ____를 바탕으로 한 ____을 발표하며 광복 후의 나라를 준비했죠.
국내에서도 ____ 선생이 비밀리에 ____을 조직해 때를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1943년 ____에서 연합국은 한국의 독립을 처음 약속했고,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꿈에 그리던 ____을 맞이했습니다.
단답형 문제
(빈칸을 클릭하면 답이 보입니다)
-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되어 일제가 침략 전쟁을 확대하는 배경이 된 세계적 경제 위기는? ____
- 일제가 만주 사변 이후 한반도를 침략 전쟁의 물자 공급 기지로 삼은 정책은? ____
- 1938년, 일제가 전쟁 동원을 위해 인력과 물자를 마음대로 수탈할 수 있도록 제정한 법령은? ____
- 일제가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뜻으로 내세운 민족 말살 통치 구호는? ____
- 일제가 한국인을 ‘천황의 충성스러운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 암송을 강요한 맹세는? ____
- 1940년부터 일제가 한국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강요한 정책은? ____
- 1942년, 한글 연구와 사전 편찬을 준비하던 단체를 일제가 탄압하여 해산시킨 사건은? ____
- 1930년대 북만주에서 지청천의 지휘 아래 대전자령 전투 등에서 활약한 독립군 부대는? ____
- 1930년대 남만주에서 양세봉의 지휘 아래 영릉가 전투 등에서 활약한 독립군 부대는? ____
- 1937년 동북 항일 연군이 국내로 진공하여 함경도 보천보의 주재소를 습격한 전투는? ____
- 1935년 중국 관내에서 김원봉 등을 중심으로 좌우익 세력이 연합하여 결성한 정당은? ____
- 1938년 중국 관내에서 결성된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로, 조선 민족혁명당의 산하 조직이었던 부대는? ____
- 1940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충칭에서 창설한 정규 군대의 이름은? ____
- 한국광복군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인물은? ____
- 임시 정부가 1941년 발표한 건국 강령의 기초가 된 조소앙의 이념은? ____
- 1944년 여운형이 광복에 대비하여 국내에서 조직한 비밀 결사는? ____
- 1943년 연합국 정상이 모여 한국의 독립을 최초로 약속한 국제 회담은? ____
-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며 우리가 국권을 되찾은 것을 무엇이라 하는가? ____
- 1941년 일제가 소학교의 명칭을 ‘황국 신민의 학교’라는 뜻으로 바꾼 이름은? ____
- 한국광복군이 미국 전략 정보국(OSS)과 연계하여 준비했던 국내 진입 작전의 이름은?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