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엔 중3 역사2 – IV-1. 통치 체제와 대외 관계

미래엔 중3 역사2 – IV-1. 통치 체제와 대외 관계

미래엔 중3 역사 2

IV. 조선의 성립과 발전

1. 통치 체제와 대외 관계

핵심 내용 정리

1) 위화도 회군과 조선의 건국

  • 배경: 고려 말 명의 철령 이북 땅 요구 → 우왕, 최영의 요동 정벌 추진.
  • 위화도 회군 (1388): 이성계가 요동 정벌 반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우왕, 최영 제거 및 정권 장악.
  • 과전법 실시 (1391): 이성계, 신진 사대부가 토지 제도 개혁. 경기 토지를 전·현직 관료에게 수조권 지급. 신진 사대부 경제 기반 마련, 국가 재정 확충.
  • 조선 건국 (1392): 정도전 등 급진 개혁파 신진 사대부와 이성계가 협력하여 건국. 정몽주 등 온건 개혁파 제거. 국호 ‘조선’ (고조선 계승 의미).

2) 한양 천도와 국가 기틀 확립

  • 통치 이념: 유교 (성리학) 채택. 민본 사상 강조. 왕도 정치 추구.
  • 한양 천도 (1394): 국토 중앙 위치, 교통 편리, 방어 유리. 유교 이념 따라 도성 건설 (경복궁, 종묘, 사직단, 4대문).
  • 태종 (이방원): 왕자의 난 통해 집권. 사병 혁파 (군권 장악). 6조 직계제 실시 (왕권 강화). 호패법 실시 (인구 파악, 세금·군역 부과 기초).
  • 세종: 유교 이상 정치 추구. 집현전 설치 (학문 연구, 인재 양성). 경연 활성화. 의정부 서사제 실시 (왕권-신권 조화). 4군 6진 개척. 훈민정음 창제. 과학 기술 발전.
  • 세조: 계유정난 통해 집권. 집현전, 경연 폐지. 6조 직계제 부활 (왕권 강화). 직전법 실시. 『경국대전』 편찬 시작.
  • 성종: 홍문관 설치 (집현전 계승), 경연 부활. 『경국대전』 완성·반포 (1485) → 유교적 법치 국가, 중앙 집권 체제 완성.

3) 중앙 및 지방 통치 제도 정비

  • 중앙 정치 기구:
    • 의정부: 최고 정무 기구.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합의 정책 결정.
    • 6조: 행정 실무 담당 (이·호·예·병·형·공).
    • 승정원: 왕명 출납 (왕의 비서 기관).
    • 의금부: 왕 직속 사법 기구 (반역죄 등 중대 범죄).
    • 3사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언론 기능. 권력 독점, 부정 방지. 왕권-신권 조화 추구. (사헌부-감찰, 사간원-간쟁, 홍문관-경연·자문).
    • 기타: 춘추관(역사 기록), 성균관(최고 교육 기관), 한성부(수도 행정·치안).
  • 지방 행정 제도:
    • 전국 8도 설치. 부·목·군·현 설치.
    • 모든 군현에 수령 파견 (고려와 차이점). 수령(지방관)은 행정·사법·군사권 장악. 임기제, 상피제 적용.
    • 향리: 수령 보좌, 행정 실무. 세습직, 지위 격하 (고려와 차이점).
    • 관찰사 (감사): 각 도에 파견. 수령 지휘·감독.
    • 유향소: 지방 양반 자치 기구. 수령 보좌, 향리 감찰, 풍속 교화. (중앙의 경제소 통해 통제)

4) 군사·교통·통신 및 관리 등용 제도

  • 군사 제도: 양인개병제 원칙. 16~60세 양인 남성 군역 의무.
    • 중앙군: 5위. 궁궐, 수도 방어.
    • 지방군: 각 도 병영(병마절도사), 수영(수군절도사) 설치. 잡색군(예비군).
  • 교통·통신 제도:
    • 봉수제: 국경 위급 상황 중앙 전달 (연기, 불).
    • 역참제: 도로망 따라 역 설치. 공문서 전달, 물자 수송.
    • 조운제: 세곡 운반.
  • 관리 등용 제도:
    • 과거제 중심: 문과(양반), 무과(양반~상민), 잡과(기술관, 중인) 구분. 3년마다 정기 시행(식년시). 비정기 시험도 있음.
    • 음서, 천거: 제한적 시행 (고려보다 비중 감소). 능력 중시 사회 지향.
  • 교육 제도: 유교 교육 강조.
    • 서당 (초등) → 4부 학당(한양), 향교(지방) (중등) → 성균관 (최고 학부).
    • 기술 교육: 해당 관청에서 실시.

5) 대외 관계 (사대교린)

  • 원칙: 사대교린 (큰 나라는 섬기고, 이웃 나라는 대등하게 사귐).
  • 명과의 관계 (사대): 건국 초기 갈등(요동 정벌 문제) → 태종 이후 친선 관계. 사절 파견, 조공 무역 통해 선진 문물 수용, 경제·문화적 실리 추구. 왕권 안정 도모.
  • 여진·일본과의 관계 (교린):
    • 회유책: 국경 무역 허용 (무역소 설치), 귀순 장려 (관직, 토지 제공).
    • 강경책: 침입 시 군사적 토벌. 여진 정벌 (세종, 4군 6진 설치), 쓰시마섬(대마도) 토벌 (세종, 이종무).
    • 일본 통제: 3포 개항 (부산포, 제포, 염포) 제한적 교역 허용. 계해약조.
  • 기타: 류큐, 시암, 자와 등 동남아시아 국가와도 교류.

스토리텔링

새로운 나라, 조선의 이야기

고려의 마지막은 혼란스러웠어요. 중국 대륙에 새로 등장한 ____가 고려 땅인 ____ 이북 지역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죠. 당시 왕이었던 ____과 장군 ____은 이에 맞서 요동 땅을 정벌하기로 결정했어요. 하지만 군대를 이끌고 압록강 ____까지 갔던 장군 ____는 ‘4가지 이유’를 들며 반대했고, 결국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돌아와 정권을 잡았답니다(1388년). 이것이 바로 ____이에요.

권력을 잡은 이성계와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____들은 가장 먼저 토지 제도를 개혁했어요. 권문세족이 차지했던 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____(1391년)을 만들어, 경기도 땅을 관리들에게 나누어 주었죠. 이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데 참여할 관리들의 경제적 기반이 되었어요. 하지만 신진 사대부 안에서도 의견이 갈렸어요. ____처럼 아예 새 나라를 만들자는 쪽과, ____처럼 고려를 지키면서 개혁하자는 쪽으로요. 결국 이성계는 정도전 등과 손을 잡고 정몽주를 제거한 뒤, 마침내 ____이라는 새 나라를 세웠답니다(1392년). 고조선을 계승한다는 의미를 담았죠.

새 나라 조선은 ____를 나라의 기본 이념으로 삼았어요.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생각하는 ‘____‘ 사상을 내세우고, 왕이 올바른 정치를 펴는 ‘____‘를 강조했죠. 그리고 나라의 기틀을 새롭게 다지기 위해 수도를 개경에서 ____(지금의 서울)으로 옮겼어요(1394년). 한양은 우리나라 중앙에 있고, 한강이 흘러 교통이 편리하며, 산으로 둘러싸여 방어에도 유리했거든요. 궁궐인 ____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역대 왕들의 위패를 모시는 ____를, 오른쪽에는 땅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____을 두는 등 도시 전체를 유교 이념에 맞게 만들었답니다.

나라의 기틀을 다지는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어요. 태조 이성계의 아들 ____(훗날 태종)은 왕자의 난을 통해 정도전 같은 공신들을 제거하고 왕위에 올랐어요. ____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공신들이 거느리던 개인 군대(____)를 없애고, 6조의 판서들이 직접 왕에게 보고하도록 하는 ____를 실시했어요. 또 ____을 만들어 백성들의 수를 파악하고 세금과 군역의 기반을 마련했죠.

태종의 뒤를 이은 ____대왕은 아버지 때 다져진 안정을 바탕으로 조선 최고의 황금기를 열었어요. 학문 연구 기관인 ____을 만들어 훌륭한 학자들을 키우고, 왕과 신하가 함께 공부하며 정책을 토론하는 ____을 활발히 열었어요. 정책 결정 과정을 의정부와 논의하는 ____를 통해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꾀했죠. 북쪽 국경 지역에는 ____을 설치하여 영토를 넓혔고, 무엇보다 백성을 위해 ____을 창제했어요!

하지만 세종의 손자인 단종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자, 세종의 둘째 아들이었던 ____(훗날 세조)이 쿠데타(____)를 일으켜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했어요. ____는 다시 ____를 부활시키고 집현전과 경연을 없애는 등 왕권을 크게 강화했죠. 또한 현직 관리에게만 토지를 주는 ____을 실시하고, 나라의 기본 법전인 ____ 편찬을 시작했어요.

이 법전은 세조의 손자인 ____ 때 완성되어 반포되었답니다(1485년). ____의 완성으로 조선은 드디어 체계적인 법에 따라 다스려지는 유교적 법치 국가의 기틀을 완성하게 되었어요. 성종은 또한 집현전을 계승한 ____을 설치하고 경연을 다시 열어 학문 연구와 정책 토론을 활발히 했답니다.

이렇게 완성된 조선의 통치 시스템을 좀 더 살펴볼까요? 중앙 정치의 핵심은 왕 아래 최고 의결 기구인 ____와 실제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____(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였어요. 왕의 명령을 전달하는 ____, 왕 직속의 특별 사법 기관인 ____도 중요했죠. 특히 ____라고 불리는 ____(관리 감찰), ____(왕에게 간언), ____(경연 주관, 정책 자문)은 권력의 독점과 부정을 막는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지방은 전국을 ____로 나누고 그 아래 부, 목, 군, 현을 두었어요. 고려와 달리 모든 군현에 왕이 직접 임명한 ____(사또)을 파견하여 중앙의 통제력을 강화했죠. 수령은 그 지역의 행정, 사법, 군사권을 모두 가졌어요. 수령을 돕는 아전 역할은 ____가 맡았지만, 고려 때보다 지위가 낮아졌어요. 각 도에는 ____(감사)를 보내 수령들을 감독하게 했고, 지방의 양반들은 ____라는 자치 기구를 만들어 수령을 돕거나 향리를 감시하기도 했답니다.

군사적으로는 16세부터 60세까지의 모든 양인 남성이 군대에 가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어요. 수도와 궁궐은 ____라는 중앙군이 지켰고, 지방에는 각 도의 ____(육군)와 ____(수군)가 군대를 지휘했어요. 위급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산봉우리마다 불이나 연기를 피우는 ____와, 말을 갈아타며 공문서를 전달하는 ____도 정비되었죠.

관리를 뽑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____ 시험이었어요. 양반 자제들이 주로 응시하는 ____, 양반부터 평민까지 응시 가능했던 ____, 기술관을 뽑는 ____가 있었죠. 3년마다 정기적으로 시험을 치렀어요. 물론 조상의 공으로 관리가 되는 ____ 제도도 있었지만, 고려보다 그 영향력이 훨씬 줄어들어 능력 위주로 관리를 뽑으려 했답니다. 교육은 ____에서 기초를 배우고, 서울의 ____이나 지방의 ____에서 중등 교육을, 최고의 교육 기관인 ____에서 고급 유학을 공부했어요.

외교는 ____이라는 큰 원칙 아래 이루어졌어요. 중국의 ____와는 ‘사대’ 관계를 맺어 정치적 안정을 꾀하고, 사신을 보내고 선물을 주고받는 ____을 통해 선진 문물과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 했죠. 북쪽의 ____이나 남쪽의 ____과는 ‘교린’ 관계를 맺었어요. 평화로울 때는 국경 지역에 ____를 열어 교역하고, 귀순하는 사람들을 받아주기도 했지만, 침략해 올 때는 단호하게 군대를 보내 토벌했어요. 세종 때 여진족을 몰아내고 ____을 설치한 것과, ____를 시켜 ____을 정벌한 것이 대표적인 예죠. 일본과는 ____(부산포, 제포, 염포)를 열어 제한적으로 교역을 허용하기도 했답니다. 이렇게 조선은 건국 초기에 나라 안팎의 기틀을 단단히 다져나갔어요.

단답형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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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려 말, 명의 철령 이북 땅 요구에 반발하여 최영 등이 추진하려 했던 정벌은? ____
  2. 이성계가 요동 정벌을 거부하고 군대를 돌린 사건은? ____
  3. 조선 건국 직전, 신진 사대부의 경제적 기반 마련을 위해 실시된 토지 제도는? ____
  4. 고려 왕조 유지를 주장하며 이성계 세력에 의해 제거된 온건 개혁파 신진 사대부의 대표 인물은? ____
  5. 이성계와 함께 조선 건국을 주도한 급진 개혁파 신진 사대부의 대표 인물은? ____
  6. 조선의 건국 연도는? ____
  7. 조선의 건국 이념이자 통치 이념은 무엇인가? ____
  8. 조선이 수도로 삼은 곳의 당시 이름은? ____
  9. 한양 도성 건설 시 유교 이념에 따라 궁궐 왼쪽에 지은, 역대 왕의 위패를 모신 곳은? ____
  10. 한양 도성 건설 시 유교 이념에 따라 궁궐 오른쪽에 지은,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던 곳은? ____
  11. 왕자의 난을 통해 즉위하여 사병 혁파, 6조 직계제, 호패법 등을 실시한 왕은? ____
  12. 6조의 판서가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직접 왕에게 보고하는 제도는? ____
  13. 16세 이상 남자가 차고 다니던 신분증으로, 인구 파악과 군역 부과 등에 활용된 것은? ____
  14. 집현전 설치, 경연 활성화, 4군 6진 개척, 훈민정음 창제 등 많은 업적을 남긴 왕은? ____
  15. 왕과 신하들이 함께 유교 경전과 역사를 공부하며 국정을 논의하던 제도는? ____
  16. 6조 판서가 정책을 먼저 의정부와 논의한 후 왕에게 보고하여 결정하게 한 제도는? ____
  17. 계유정난으로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라 왕권을 강화한 왕은? ____
  18. 세조 때 시작하여 성종 때 완성, 반포된 조선의 기본 법전은? ____
  19. 경국대전을 완성하고 홍문관 설치, 경연 부활 등 문물 정비를 이룬 왕은? ____
  20. 조선의 최고 정무 기구로, 3정승이 국정을 총괄하던 곳은? ____
  21. 조선의 행정 실무를 담당했던 6개의 중앙 관청을 통칭하는 말은? ____
  22. 왕명 출납을 담당했던 왕의 비서 기관은? ____
  23. 관리 감찰을 담당했던 언론 기관은? ____
  24. 왕에게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간언하는 역할을 했던 언론 기관은? ____
  25. 궁중 서적 관리, 경연 담당, 왕의 정책 자문 역할을 했던 언론 기관은? ____
  26.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을 합쳐 부르는 명칭은? ____
  27. 조선 시대 지방 행정 구역 단위인 8도 아래에 설치된 하위 행정 구역들을 통칭하는 말은? ____
  28. 조선 시대 모든 군현에 파견되어 행정·사법·군사권을 행사했던 지방관은? ____
  29. 각 도에 파견되어 수령을 지휘·감독했던 관리는? ____
  30. 조선 시대 관리 선발의 가장 중요한 제도로, 문과, 무과, 잡과로 나뉜 것은? ____

5지 선다형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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