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엔 중3 역사 2
III. 고려의 성립과 변천
2. 고려의 대외 관계
핵심 내용 정리
1) 다원적 국제 질서가 만들어지다
- 10~12세기 동아시아 정세: 송(한족), 요(거란족), 금(여진족) 등 여러 나라가 세력 균형 이루며 공존 (다원적 국제 질서). 고려도 독자적 세력 형성.
- 고려와 송의 관계: 고려는 송과 활발히 교류. 선진 문물 수용, 경제적·문화적 이익 추구. 송은 거란, 금 견제 위해 고려와 외교 관계 유지.
- 거란(요)의 침입과 격퇴:
- 배경: 고려의 북진 정책, 송과의 친선 관계에 거란 불만.
- 1차 침입(993): 서희의 외교 담판 → 거란군 철수, 고려는 송과 관계 끊고 거란과 교류 약속, 압록강 동쪽 강동 6주 확보.
- 2차 침입(1010): 강조의 정변 구실. 양규의 활약으로 격퇴.
- 3차 침입(1018): 강감찬의 귀주 대첩(1019) → 거란군 대파.
- 결과: 고려-송-요 세력 균형 유지. 고려, 개경 나성 축조, 국경 지역 천리장성 축조(압록강~도련포).
- 여진(금)과의 관계:
- 초기: 여진족은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섬김. 12세기 완옌부 중심으로 세력 통합 후 고려 국경 침범.
- 윤관의 여진 정벌: 별무반(신기군, 신보군, 항마군) 편성 → 여진 정벌, 동북 9성 축조(1107). 여진의 반환 요구, 관리 어려움으로 1년 만에 반환.
- 금 건국(1115): 여진족, 금 건국 후 요 멸망, 송 압박. 고려에 군신 관계 요구. 이자겸 등 문벌 귀족 수용(1126).
- 기타 교류: 일본, 아라비아 상인 등과 교류. 벽란도(국제 무역항). ‘코리아(Korea)’ 이름 유래.
2) 고려, 몽골의 침입에 맞서 싸우다
- 몽골 제국 성장: 13세기 초 칭기즈 칸이 몽골 통일. 유라시아 대륙 정복 활동 전개.
- 몽골 침입 배경: 고려-몽골 연합 강동성 전투 이후 몽골 사신 저고여 피살 사건 구실.
- 1차 침입(1231): 박서의 귀주성 항전. 고려-몽골 강화 체결, 몽골군 철수.
- 최우 정권의 항전: 몽골의 무리한 요구 거부, 수도 강화도 천도(1232) → 장기 항전 준비.
- 몽골의 재침입과 고려의 항전:
- 처인성 전투: 승려 김윤후가 몽골 장수 살리타 사살.
- 충주성 전투: 노비 등 하층민 활약.
- 백성들의 끈질긴 저항 (산성, 섬 피난).
- 문화재 소실 (황룡사 9층 목탑, 초조대장경 등). 부처의 힘으로 국난 극복 기원 → 팔만대장경 조판 시작(1236~1251).
- 강화 체결(1270): 최씨 무신 정권 붕괴 후 개경 환도 결정. 몽골과 강화 체결.
- 삼별초의 항쟁: 배중손 지휘 아래 개경 환도 반대, 강화도 → 진도 → 제주도로 이동하며 항전. 여몽 연합군에 의해 진압(1273). 자주정신 보여줌.
스토리텔링
격동의 동아시아, 고려의 선택과 항쟁
고려가 건국될 무렵, 중국 대륙에서는 당나라가 멸망하고 여러 나라들이 힘을 겨루는 혼란한 시대였어요. 북방에서는 ____족이 세운 요나라가, 이후에는 ____족이 세운 금나라가 강력한 힘을 자랑했고, 남쪽에는 한족이 세운 ____나라가 있었죠. 이렇게 여러 나라가 힘의 균형을 이루는 ____ 속에서 고려는 당당히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며 성장했답니다.
고려는 특히 ____나라와 친하게 지냈어요. 송의 발달된 문물을 받아들이고, 무역을 통해 경제적 이익도 얻었죠. 송나라 역시 북방 민족을 견제하기 위해 고려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고려의 국제 무역항이었던 ____에는 송나라 상인뿐 아니라 멀리 ____ 상인들까지 찾아와 교역을 했답니다. 이때 고려의 이름이 서양에 알려져 오늘날 ‘____‘라는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고 해요!
하지만 북방 민족과의 관계는 순탄치 않았어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____(요)은 고려가 송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어요. 결국 993년, 거란의 ____이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해 왔죠(1차 침입). 이때 고려의 뛰어난 외교관 ____가 담판을 벌여 거란군을 물러나게 하고, 오히려 압록강 동쪽의 ____ 땅을 얻어내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어요!
거란은 이후에도 두 차례나 더 고려를 침략했어요. 3차 침입(1018년) 때는 ____ 장군이 ____에서 벌어진 큰 전투(귀주 대첩, 1019년)에서 거란군을 크게 무찔렀답니다. 이 승리 이후 동아시아에는 고려, 송, 요 사이에 힘의 균형이 유지되었어요. 고려는 국방을 강화하기 위해 수도 ____에 성을 쌓고, 북쪽 국경에는 압록강에서 동해안까지 이어지는 긴 성벽, ____을 쌓았죠.
거란이 물러간 뒤에는 동북방의 ____족이 힘을 키우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섬기던 여진족이 점차 성장하여 고려 국경을 넘보기 시작하자, 고려의 ____ 장군은 특별 부대인 ____(신기군, 신보군, 항마군으로 구성)을 이끌고 여진족을 정벌했어요. 그리고 그 지역에 9개의 성(____)을 쌓았죠(1107년). 하지만 여진족의 계속된 반환 요구와 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결국 1년 만에 돌려주고 말았답니다.
힘을 키운 여진족은 마침내 ____나라를 세우고(1115년), 거란(요)을 멸망시킨 뒤 송나라까지 압박했어요. 그리고는 고려에게 자신들을 황제로 모시는 ____를 요구했죠.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문벌 귀족 ____ 등은 현실적인 힘의 차이를 인정하고 금의 요구를 받아들였어요(1126년).
13세기 초, 북방 초원에서는 ____이 몽골족을 통일하고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했어요. 몽골은 순식간에 유라시아 대륙을 정복해 나갔고, 고려에도 손길을 뻗치기 시작했죠. 고려에 왔던 몽골 사신 ____가 국경 지역에서 피살된 사건을 구실 삼아 몽골은 고려를 침략해 왔어요(1231년). 첫 침입 때 ____ 장군이 ____에서 끈질기게 저항했지만, 결국 고려는 몽골과 강화를 맺게 되었죠.
하지만 당시 고려의 실권자였던 무신 ____는 몽골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고, 수도를 ____로 옮겼어요(1232년). 몽골은 수군이 약했기 때문에 섬으로 들어오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 거죠. 이후 고려는 약 40년간 몽골과 힘겨운 싸움을 벌였어요. ____(용인) 전투에서는 승려 ____가 화살로 몽골 장수 ____를 사살하는 큰 공을 세우기도 했고, ____에서는 노비들까지 힘을 합쳐 몽골군을 물리쳤답니다. 백성들은 산성이나 섬으로 피난하며 끈질기게 저항했어요.
몽골의 계속된 침략으로 국토는 황폐해지고, ____과 ____ 같은 소중한 문화재들이 불타 없어지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어요. 고려 사람들은 부처님의 힘으로 몽골을 물리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____(재조대장경)을 만들기 시작했답니다.
결국 최씨 무신 정권이 무너지자, 고려 정부는 몽골과의 강화를 결정하고 수도를 다시 ____으로 옮겼어요(1270년). 하지만 무신 정권의 군사 기반이었던 ____는 끝까지 몽골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했어요. ____의 지휘 아래 ____에서 봉기하여, ____, 그리고 ____로 근거지를 옮겨가며 3년간 끈질기게 항전했지만, 결국 고려와 몽골 연합군에게 진압되고 말았죠(1273년). 비록 실패했지만, 삼별초의 항쟁은 외세에 굴복하지 않은 고려의 자주정신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었답니다.
단답형 문제
(빈칸을 클릭하면 답이 보입니다)
- 10~12세기 동아시아에서 송, 요, 금 등 여러 나라가 힘의 균형을 이룬 국제 질서를 무엇이라 하는가? ____
- 고려가 송과 활발히 교류하며 선진 문물을 수용한 주된 이유는? ____
- 고려의 북진 정책과 송과의 친선 관계에 불만을 품고 침입해 온 나라는? ____
- 거란의 1차 침입 때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획득한 인물은? ____
- 서희가 거란 장수 소손녕과의 담판에서 확보한 압록강 동쪽의 영토는? ____
- 거란의 2차 침입 때 흥화진 등에서 활약하여 거란군을 격퇴한 장군은? ____
- 거란의 3차 침입 때 귀주에서 거란군을 크게 물리친 고려의 장수는? ____
- 강감찬이 거란의 대군을 격파한 전투는? ____
- 귀주 대첩 이후 고려가 국방 강화를 위해 개경 주위에 쌓은 성은? ____
- 귀주 대첩 이후 고려가 북쪽 국경 지역에 쌓은 긴 성벽은? ____
- 12세기 초 고려 국경을 침범하기 시작한 동북방의 민족은? ____
- 윤관이 여진 정벌을 위해 편성한 특별 부대의 이름은? ____
- 별무반을 구성하는 세 종류의 군대는? ____
- 윤관이 여진족을 몰아내고 동북 지역에 쌓은 9개의 성은? ____
- 여진족이 세운 나라는? ____
- 금나라가 고려에 요구한 관계는? ____
- 금의 군신 관계 요구를 수용한 고려의 집권 세력은? ____
- 고려 시대 국제 무역항으로 아라비아 상인까지 왕래했던 곳은? ____
- ‘Korea’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국가는? ____
- 13세기 초 몽골족을 통일하고 대제국을 건설한 인물은? ____
- 몽골이 고려를 침입하는 구실이 된 사건은? ____
- 몽골의 1차 침입 때 귀주성에서 끝까지 항전한 장수는? ____
- 몽골의 침입에 맞서 고려 정부가 수도를 옮긴 곳은? ____
- 몽골 침입 당시 처인성 전투에서 몽골 장수 살리타를 사살한 인물은? ____
- 몽골 침입 당시 불타 없어진 대표적인 문화재 2가지는? ____
- 고려가 부처의 힘으로 몽골을 물리치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만든 대장경은? ____
- 최씨 무신 정권 붕괴 후 고려 정부가 몽골과 강화를 맺고 수도를 다시 옮긴 곳은? ____
- 개경 환도에 반대하며 끝까지 몽골에 항전한 무신 정권의 군사 조직은? ____
- 삼별초 항쟁을 이끈 초기 지도자는? ____
- 삼별초가 강화도 → 진도 → (?) 로 이동하며 항전한 마지막 근거지는?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