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한반도 분단 극복과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노력
비상 한국사 2
1. 교과서 핵심 정리
북한 사회의 변화와 남북 관계
- 북한의 독재 체제와 사회 변화:
- 권력 세습과 통치 이념: 김일성은 ‘주체사상’을 내세워 1인 독재 체제를 구축했고, 김정일은 ‘선군 정치’를 통해 군부 중심의 통치를 강화하며 3대 세습의 기반을 닦음. 김정은은 핵무기 개발을 지속하며 국제적 고립을 자초함.
- 경제난과 사회 변화: 1990년대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연이은 자연재해로 극심한 경제난(‘고난의 행군’)을 겪음. 이 과정에서 국가 배급제가 사실상 붕괴되고, 주민들은 비공식 시장인 ‘장마당’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게 됨. 이는 북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
- 평화 통일을 위한 노력:
- 박정희 정부: 1972년, 국내외 데탕트(긴장 완화) 분위기 속에서 남북이 최초로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의 3대 통일 원칙에 합의한 ‘7·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
- 노태우 정부: 탈냉전 흐름 속에서 1991년 남북한이 UN에 동시 가입하고, 남북 상호 체제 인정과 불가침 등을 약속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 기본 합의서)를 채택.
- 김대중 정부: 대북 포용 정책인 ‘햇볕 정책’을 추진하여 2000년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정상 회담을 성사시키고 ‘6·15 남북 공동 선언’을 발표. 이를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개성 공단 사업 등 교류 협력이 활성화됨.
- 노무현 정부: 2007년 제2차 남북 정상 회담을 개최하고, 6·15 선언의 이행과 경제 협력 확대를 내용으로 하는 ’10·4 선언’을 채택.
동아시아의 영토 및 역사 갈등
- 영토 갈등 – 독도 문제:
- 독도는 역사적(『삼국사기』, 『세종실록지리지』 등),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대한민국의 영토임.
- 일본은 1905년 러일 전쟁 중 시마네현 고시를 통해 독도를 불법 편입하려 한 것을 근거로 부당한 영유권 주장을 계속하고 있음.
- 역사 갈등:
- 일본의 역사 왜곡: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역사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키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등 책임을 회피함. 또한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총리 등 정치인들이 참배하여 주변국의 반발을 사고 있음.
- 중국의 역사 왜곡 (동북공정): 현재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연구 프로젝트. 특히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중국의 지방 정권 역사로 규정하여 한국사를 왜곡함.
- 갈등 해결을 위한 노력:
- 정부 차원의 외교적 대응과 함께, 한·중·일 3국의 양심적인 학자와 교사, 시민 단체를 중심으로 공동 역사 연구, 공동 역사 교재 편찬, 청소년 역사 체험 캠프 등 민간 차원의 교류와 연대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음.
2. 스토리텔링 한국사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 관계에 처음으로 따스한 훈풍이 분 것은 1972년이었습니다. 남과 북은 비밀리에 특사를 교환했고, 마침내 “우리의 통일 문제는 외세의 간섭 없이 자주적으로, 전쟁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하나의 민족으로서 단결해야 한다”는 내용의 7·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비록 각자의 체제 유지에 이용되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이 통일의 원칙에 합의한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냉전의 벽이 허물어지던 1991년, 노태우 정부는 서로를 더 이상 ‘괴뢰’가 아닌 실체로 인정하는 남북 기본 합의서를 채택하고, 나란히 유엔에 가입하며 평화 공존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본격적인 화해와 협력의 시대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두꺼운 외투를 벗기려면 차가운 바람이 아닌 따뜻한 햇볕을 쬐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추진된 이 정책은, 2000년 분단 역사상 최초의 남북 정상 회담과 6·15 남북 공동 선언이라는 기적 같은 결실을 낳았습니다. 이 선언을 계기로 수십 년간 생사조차 몰랐던 이산가족들이 눈물의 상봉을 했고, 끊겼던 경의선 철길이 다시 이어졌으며, 개성 공단과 금강산 관광길이 열렸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제2차 정상 회담과 10·4 선언을 통해 이러한 평화의 흐름을 이어가려 노력했습니다.
한편, 북한 사회도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었습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 속에서 주체사상과 선군 정치가 통치 이념으로 자리 잡았지만, 1990년대 사회주의권의 붕괴는 북한 경제에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국가의 배급이 끊기자 주민들은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생겨난 비공식 시장 장마당은 이제 북한 사회를 움직이는 또 하나의 심장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와 더불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역사 왜곡을 서슴지 않는 일본, 그리고 고구려사를 자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우리의 역사를 지키고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무거운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