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6월 민주 항쟁 이후 민주화 과정
비상 한국사 2
1. 교과서 핵심 정리
민주주의의 진전과 평화적 정권 교체
- 노태우 정부 (1988~1993):
- 출범 배경: 6월 민주 항쟁의 성과로 9차 개헌(대통령 직선제, 5년 단임) 실시. 그러나 야권의 김영삼·김대중 후보 단일화 실패로 여당의 노태우 후보가 약 36%의 득표율로 당선됨.
- 여소야대 정국: 총선 결과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며 ‘여소야대’ 국회가 구성됨. 이로 인해 5공 청문회 개최, 광주 민주화 운동 진상 규명 등이 이루어짐.
- 주요 정책: 탈냉전 기류 속에서 소련, 중국 등 공산권 국가와 수교하는 ‘북방 외교’를 성공적으로 추진.
- 3당 합당(1990): 여소야대 정국 운영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집권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통일민주당(김영삼), 신민주공화당(김종필)과 합당하여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을 창당함.
- 김영삼 정부 (1993~1998) – ‘문민 정부’:
- 의의: 30여 년 만에 군인 출신이 아닌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 취임.
- 개혁 정책: 하나회 등 군부 내 사조직 척결, 공직자 재산 등록 의무화, 모든 금융 거래를 실명으로 하도록 한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 지방 자치제 전면 실시(1995) 등 개혁 추진.
- ‘역사 바로 세우기’: 5·18 민주화 운동 특별법 제정,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구속 및 처벌, 일제 식민 통치의 상징이었던 옛 조선 총독부 건물 철거(1995).
- 한계: 임기 말, 기업들의 연쇄 부도와 외환 보유고 부족으로 국가 부도 사태에 직면, 국제 통화 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하는 ‘외환 위기’를 맞음.
- 김대중 정부 (1998~2003) – ‘국민의 정부’:
- 의의: 헌정 사상 최초로 선거를 통한 평화적 여야 정권 교체 실현.
- 주요 정책: 외환 위기 조기 극복(금 모으기 운동 등), 생산적 복지 정책 추진, 여성부 및 국가 인권 위원회 신설, 과거사 진상 규명(제주 4·3 사건, 의문사 진상 규명 등).
시민 사회의 성장과 시민 운동
- 시민 단체의 활성화:
- 6월 민주 항쟁 이후 민주주의의 진전과 함께 시민들의 사회 참여 의식이 높아지면서 비정부 기구(NGO), 즉 시민 단체가 급증함.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참여연대 등은 정부 정책 비판, 권력 감시, 부정부패 고발, 정책 대안 제시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침.
- 노동·농민 운동의 발전:
- 노동 운동: 19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을 계기로 노동조합 결성이 활발해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 전국 단위 조직 결성.
- 농민 운동: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 따른 농산물 수입 개방에 반대하는 운동을 치열하게 전개.
- 다양한 시민 운동의 전개:
- 환경 운동: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을 계기로 환경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환경 운동이 본격화됨.
- 여성 운동: 성차별적인 사회 제도와 관습 철폐를 요구. 꾸준한 노력의 결과로 가부장제의 상징이었던 호주제가 폐지(2008년 시행)되는 성과를 거둠.
- 시민의 정치 참여 확대: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선 운동,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사건 추모 촛불 집회, 대통령 탄핵 반대 및 찬성 촛불 집회 등 시민들이 직접적이고 평화적인 방식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사례가 증가함.
2. 스토리텔링 한국사
1987년 6월,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던 뜨거운 함성은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야권의 분열이라는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혔습니다. 김영삼과 김대중, 두 민주화의 거목이 끝내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군부 정권의 후계자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어부지리를 안겨주었죠. 그러나 국민들은 총선에서 여당에게 과반수 의석을 주지 않는 여소야대 구도를 만들어주었고, 국회에서는 전두환 정권의 비리를 파헤치는 5공 청문회가 열려 온 국민의 눈과 귀를 TV 앞으로 모았습니다. 또한 그는 냉전의 얼음을 깨고 소련, 중국과 손을 잡는 북방 외교를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후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 된 김영삼은 ‘개혁’의 칼을 빼 들었습니다. “내 통장에 내 이름 하나 못 쓰는 게 말이 되느냐”며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시했고, 우리 동네 구청장과 시장을 우리 손으로 뽑는 지방 자치제를 전면 실시하여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하지만 영광의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임기 말, 달러가 바닥나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하는 외환 위기가 닥쳤고, 온 국민이 장롱 속 금붙이를 내놓으며 힘겨운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절망적인 위기 속에서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며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민주주의가 성숙해가면서 시민들의 목소리도 커졌습니다. 경실련 같은 시민 단체들은 정부를 감시하고,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자들은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요구했습니다. 여성들은 오랜 불평등의 상징이었던 호주제 폐지를 이끌어냈고, 시민들은 선거 때마다 부적격 후보를 떨어뜨리는 낙선 운동을 벌이거나 광장에 모여 평화의 촛불을 들며 직접 민주주의를 실천해 나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