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문화 변동과 일상생활
비상 한국사 2
1. 교과서 핵심 정리
산업화와 일상생활의 변화
- 도시화의 가속과 생활 공간의 변화:
- 이촌향도와 도시 문제: 산업화로 일자리를 찾아 농촌 인구가 도시로 대거 이동하면서 도시 인구가 급증. 이로 인해 주택난, 교통난, 환경 오염 등 각종 도시 문제가 발생.
- 도시 빈민층의 형성: 도시로 몰려든 빈민들은 변두리에 무허가 주택(판자촌)을 형성. 1971년 광주 대단지 사건은 정부의 무계획적인 도시 정책이 낳은 대표적인 도시 빈민 투쟁.
- 주거 형태의 변화: 정부는 주택난 해결을 위해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였고, 아파트는 현대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주거 형태로 자리 잡음.
- 의식주 생활과 가전제품의 보급:
- 식생활 변화: 정부는 쌀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혼·분식 장려 운동을 전개하고,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를 보급하여 1970년대 중반 쌀 자급을 달성.
- 가전제품 보급: 1970년대 이후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이 보급되면서 가사 노동의 부담이 줄고 생활의 편의성이 증대됨.
- 교육 제도의 변화와 교육열:
- 국가주의 교육 강화: 박정희 정부는 ‘국민 교육 헌장'(1968)을 선포하여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인간상을 강조하고, 반공·국사 교육을 통해 유신 체제를 정당화함.
- 입시 제도 개편: 과도한 입시 경쟁 완화를 위해 중학교 무시험 진학 제도(1969)와 고교 평준화 정책(1974)을 도입.
- 교육 기회 확대: 경제 성장과 높은 교육열에 힘입어 취학률이 상승. 전두환 정부는 과외를 금지하고 중학교 의무 교육을 단계적으로 실시함.
언론과 대중문화의 성장
- 정권의 언론 통제와 언론인의 저항:
- 언론 통제: 이승만 정부의 경향신문 폐간, 박정희 정부의 언론인 해직과 광고 탄압(동아일보 사태), 전두환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1980)과 보도 지침 등 독재 정권은 비판 언론을 지속적으로 탄압함.
- 언론 자유 투쟁: 4·19 혁명과 6월 민주 항쟁을 계기로 언론 자유가 신장되었으며, 유신 체제 하에서는 ‘자유 언론 실천 선언'(1974) 등 언론인들의 저항이 이어짐.
- 대중 매체의 발달과 대중문화의 명암:
- TV 시대의 개막: 1960년대 텔레비전 보급 시작, 1980년 컬러 방송이 시작되면서 가장 영향력 있는 대중 매체로 자리 잡음.
- 1970년대 문화: TV 연속극이 큰 인기를 끌었으나, 정부의 엄격한 검열과 통제(장발·미니스커트 단속, 금지곡 지정) 속에서 통기타, 청바지로 상징되는 청년 문화가 저항의 성격을 띠며 유행.
- 1980년대 문화: 전두환 정부는 국민의 정치적 관심을 돌리기 위해 3S 정책을 폈고, 그 일환으로 프로 스포츠(프로 야구, 1982)가 출범하여 대중의 인기를 얻음. 6월 민주 항쟁 이후 사회 비판적 영화와 노래가 등장하며 문화적 다양성이 증대됨.
2. 스토리텔링 한국사
산업화의 거센 바람을 타고 수많은 사람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서울의 밤은 화려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갑자기 불어난 인구로 도시는 몸살을 앓았고, 갈 곳 없는 이들은 산비탈에 판자촌을 짓고 고단한 삶을 이어갔습니다. 1971년, 정부가 서울의 빈민들을 아무런 대책 없이 경기도 광주(현 성남)로 강제 이주시킨 광주 대단지 사건은 당시 도시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비극이었습니다.
한편, 안방 풍경과 밥상머리 대화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부는 쌀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혼·분식을 강권했고, 밥맛은 없지만 수확량은 많은 통일벼가 전국에 보급되었습니다. 저녁이 되면 온 가족은 흑백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아 드라마 ‘여로’를 보며 함께 울고 웃었습니다. 자녀 교육 문제도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일류 중학’ 입시 지옥을 없앤 중학교 무시험 진학 제도는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문화의 자유로운 성장은 독재의 벽에 부딪혔습니다. 정권에 비판적인 신문은 폐간되었고, 1980년대에는 모든 언론이 청와대에서 내려오는 보도 지침에 따라 똑같은 뉴스를 내보내야 했습니다. 1970년대, 경찰은 자를 들고 다니며 청년들의 머리카락 길이와 여성들의 치마 길이를 단속했습니다. 수많은 노래가 ‘퇴폐’와 ‘불온’이라는 낙인이 찍혀 금지곡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기타와 청바지로 상징되는 청년 문화는 억압된 시대의 숨구멍이 되어 저항의 메시지를 실어 날랐고, 1982년 문을 연 프로 야구는 3S 정책의 산물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고단한 시민들에게 큰 위안과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