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산업화의 성과와 사회·환경 문제
비상 한국사 2
1. 교과서 핵심 정리
고도성장과 산업화의 추진
- 정부 주도의 경제 개발 계획:
- 1, 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1962~1971): ‘수출 주도형 공업화’ 전략. 노동 집약적 경공업(섬유, 가발, 신발 등)을 집중 육성하여 수출 증대에 주력. 경부 고속 국도 건설 등 사회 간접 자본(SOC) 확충.
- 3, 4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1972~1981): 1차 석유 파동과 선진국의 보호 무역주의 강화에 대응, 산업 구조 고도화를 위해 중화학 공업 육성으로 정책 전환. 포항 제철소, 울산·창원 기계 공업 단지, 거제 조선소 등 건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연평균 10% 이상의 고도성장 달성.
- 1980년대 경제 호황: 2차 석유 파동으로 인한 위기를 극복한 후, 저유가·저금리·저달러의 ‘3저 호황’을 맞음. 이를 바탕으로 자동차, 전자, 반도체 등 기술 집약적 조립 가공 산업이 성장하며 최초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
- 경제 성장의 문제점과 그늘:
- 대외 의존적 경제 구조: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본, 기술, 원자재를 해외에 의존하여 대외 경제 환경 변화에 취약한 구조가 됨.
-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 정부가 특정 대기업(재벌)에 금융, 세제 등 특혜를 제공하면서 경제력이 소수에 집중됨. 정경 유착 문제 발생 및 중소기업과의 격차 심화.
- 부문 간 불균형 성장: 수출·공업 위주의 성장 정책으로 농업·농촌 부문이 소외되고, 도시와 농촌 간의 소득 및 생활 수준 격차가 크게 벌어짐.
산업화에 따른 사회 변화와 갈등
- 농촌의 변화와 농민 운동:
- 이촌향도와 농촌 문제: 산업화 과정에서 일자리를 찾아 농촌 인구가 도시로 대거 이동(이촌향도). 정부의 저곡가 정책으로 농가 소득이 정체됨.
- 새마을 운동(1970~): ‘근면, 자조, 협동’을 내세워 농촌 환경 개선(초가집 개량 등)과 소득 증대에 일부 기여했으나, 관 주도의 획일적 추진과 유신 체제 유지에 동원되었다는 비판을 받음.
- 노동 문제와 노동 운동의 성장:
- 열악한 노동 현실: 경제 성장을 위해 노동자들의 희생이 강요됨. ‘근로기준법’이 있었으나 지켜지지 않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 비위생적인 작업 환경이 만연.
- 노동 운동의 분출: 전태일 분신 사건(1970)을 계기로 열악한 노동 현실이 사회 문제로 부각됨. 1987년 6월 민주 항쟁 이후, 노동자들이 전국적으로 임금 인상과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 대투쟁’을 전개하여 노동 운동이 크게 활성화됨.
- 도시화와 환경 문제:
- 급격한 도시화의 문제점: 인구의 도시 집중으로 주택난, 교통난, 상하수도 시설 부족, 쓰레기 문제 등이 심각해짐.
- 환경 오염과 시민 운동: 공장 지대의 무분별한 폐수 및 매연 배출로 대기 오염, 수질 오염 등 공해 문제 발생(예: 온산병). 1980년대 이후 시민 사회가 성장하면서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 운동이 본격화됨.
2. 스토리텔링 한국사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는 열망이 솟아올랐습니다. 1960년대, 박정희 정부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라는 거대한 청사진을 펼쳤습니다. 처음에는 자본도 기술도 없었기에, 우리에겐 젊음과 손재주뿐이었습니다. 구로공단의 여공들은 밤낮으로 재봉틀을 돌려 옷을 만들고 가발을 짰습니다. 그렇게 만든 경공업 제품들은 수출되어 달러를 벌어왔고, 그 돈은 나라의 대동맥, 경부 고속 국도를 놓는 데 쓰였습니다.
1970년대, 세계적인 석유 파동이 닥치자 우리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이제는 우리 힘으로 철을 만들고 배를 띄워야 했습니다. 포항의 용광로에서 첫 쇳물이 쏟아져 나왔고, 울산의 조선소에서는 거대한 배가 만들어졌습니다. 중화학 공업의 육성은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지만, 그 기적의 이면에는 짙은 그늘이 있었습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스물두 살 청년 전태일이 자신의 몸을 불사른 것은, 성장의 대가가 노동자의 희생이었음을 웅변하는 비극이었습니다. 한편, ‘새벽종이 울렸네’로 시작하는 노래와 함께 농촌에서는 새마을 운동이 펼쳐져 초가집이 사라지고 마을길이 넓어졌지만, 도시로 떠나는 젊은이들의 발길을 되돌리지는 못했습니다.
두 차례의 석유 파동이라는 거센 파도를 넘은 1980년대, 우리 경제는 때마침 불어온 저유가, 저금리, 저달러의 3저 호황이라는 순풍을 만났습니다. 이 기회에 우리는 자동차와 반도체를 만들며 세계 시장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하지만 압축 성장의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공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온 시커먼 연기는 하늘을 뒤덮었고, 강은 폐수로 신음하며 환경 문제를 낳았습니다. 정부의 지원을 독차지한 재벌은 거대해졌지만, 그만큼 부의 편중과 도시와 농촌의 격차라는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