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한국사2] 5. 독립 국가 건설 노력

1. 교과서 핵심 정리

1930년대: 한중 연합과 의열 투쟁의 시대

  • 만주에서의 한중 연합 작전 (1930년대 초):
    • 배경: 만주 사변(1931)으로 일본이라는 공동의 적이 생기자, 중국 내 항일 감정이 고조되면서 한국 독립군과 중국군의 연합이 성사됨.
    • 북만주: 지청천이 이끄는 한국독립군이 중국 호로군과 연합하여 쌍성보, 사도하자, 대전자령 전투에서 연이어 승리함.
    • 남만주: 양세봉이 이끄는 조선혁명군이 중국 의용군과 연합하여 영릉가, 흥경성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파함.
  •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활로 모색과 의열 투쟁:
    • 한인 애국단 조직(1931): 김구가 임시 정부의 침체를 극복하고 독립운동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 조직한 의열 투쟁 단체.
    • 대표적 의거: 이봉창 의사의 일왕 마차 폭탄 투척(1932.1),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훙커우 공원 폭탄 투척(1932.4).
    • 의거의 영향: 특히 윤봉길 의거는 중국 국민당 정부에 큰 감명을 주어, 장제스가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결정적 계기가 됨.
  • 민족 연합 전선의 형성 (1930년대 후반):
    • 민족혁명당(1935): 김원봉의 의열단을 중심으로 여러 독립운동 단체가 통합하여 결성한 중국 관내 최대 규모의 좌우 합작 정당. (단, 김구 등 임정 세력은 불참)
    • 조선의용대(1938): 민족혁명당의 군사 조직으로, 중국 국민당의 지원을 받아 창설된 중국 관내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 후일 일부는 한국광복군에 합류하고, 주력은 화북으로 이동하여 조선의용군으로 개편됨.

1940년대: 광복을 향한 총력전과 건국 준비

  •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재정비 (충칭 시기):
    • 한국광복군 창설(1940): 임시 정부의 정규군으로 창설. 총사령관에 지청천, 참모장에 이범석이 임명됨.
    • 연합군과의 연대: 태평양 전쟁 발발 직후 대일 선전 포고(1941)를 발표하고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 영국군과 함께 미얀마·인도 전선에서 활동.
    • 국내 진공 작전: 미국 전략 정보국(OSS)과 연계하여 특수 훈련을 받고 국내 진공 작전을 계획했으나, 일제의 예상보다 빠른 항복으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함.
  • 건국 원칙의 제시:
    • 임시 정부의 건국 강령(1941): 조소앙의 삼균주의(정치·경제·교육의 균등)를 바탕으로, 보통 선거를 통한 민주 공화국 수립과 토지·주요 산업 국유화를 명시.
    • 조선독립동맹의 강령(1942): 보통 선거를 통한 민주 공화국 수립, 토지 분배, 대공업 국유화 등 임정의 강령과 유사한 내용을 발표.
  • 화북 지역과 국내의 독립운동:
    •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 조선의용대 화북 지대를 중심으로 결성된 조선의용군과 이를 이끄는 정치 조직인 조선독립동맹(주석 김두봉)이 중국 공산당과 연합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
    • 조선건국동맹(1944): 여운형을 중심으로 국내에서 좌우를 망라하여 조직된 비밀 결사. 일제의 패망에 대비하여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고 건국을 준비함.

2. 스토리텔링 한국사

1931년, 일본의 군홧발이 만주를 뒤덮은 만주 사변은 새로운 투쟁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공동의 적을 맞닥뜨린 우리 독립군과 중국군은 처음으로 손을 맞잡았습니다. 북만주 설원에서는 지청천 장군의 한국독립군이, 남만주에서는 양세봉 장군의 조선혁명군이 중국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워 연전연승의 쾌거를 이루며 꺼져가던 희망의 불씨를 되살렸습니다.

한편, 상하이의 임시 정부는 오랜 침체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때, 백범 김구 선생은 마지막 승부수를 던집니다. 바로 한인 애국단을 조직하여 세상을 뒤흔들 의거를 계획한 것입니다. 1932년, 도쿄에서는 이봉창 의사의 폭탄이 일왕의 마차를 향했고,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는 윤봉길 의사의 물통 폭탄이 일본군 수뇌부를 향해 터져 나갔습니다. “중국의 백만 대군도 못 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는 장제스의 찬사는 단순한 칭찬이 아니었습니다. 이 의거를 계기로 중국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1940년대, 제2차 세계 대전의 포화 속에서 마침내 광복의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일제를 피해 충칭까지 이동한 임시 정부는 마침내 정규군인 한국광복군을 창설하고 연합군의 일원으로 당당히 대일 선전 포고를 했습니다. 동시에 조소앙의 삼균주의 사상을 담아 모든 사람이 정치, 경제, 교육적으로 평등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위대한 건국 강령을 발표했습니다. 머나먼 화북 땅에서는 김두봉의 조선독립동맹이, 그리고 삼엄한 감시가 도사리는 국내에서는 여운형의 조선건국동맹이 각자의 자리에서 해방의 그날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사상과 방법은 달랐지만, ‘독립된 조국 건설’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한 거대한 발걸음이었습니다.

3. 내용 확인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