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이후 경제·사회·문화의 변화
강화도 조약으로 문을 연 조선은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였어요. 일본 상인들은 관세도 없이 조선의 쌀을 마구 사들여 쌀값이 폭등했고, 백성들의 삶은 힘들어졌죠. 흉년이 들자 함경도 관찰사는 쌀 유출을 막기 위해 이 명령은?방곡령을 선포했지만, 일본의 억지로 오히려 배상금만 물어주게 되었어요. 임오군란 이후에는 청나라 상인들까지 이 조약은?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을 통해 내륙 깊숙이 들어와 조선 상인들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습니다.
이에 우리 민족은 가만히 있지 않았어요. 시전 상인들은 이 단체는?황국 중앙 총상회를 조직해 상권을 지키려 했고, 독립 협회는 열강의 이권 침탈에 맞서 싸웠죠. 특히 1907년, 대구에서 서상돈 등이 "담배를 끊어 나라 빚 1,300만 원을 갚자!"며 시작한 이 운동은?국채 보상 운동은 남녀노소 모두가 참여하는 전국적인 운동으로 번졌지만, 일제 통감부의 방해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변화의 바람은 일상생활에도 불어왔어요.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면서 사람들은 평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죠. 서울에는 전차가 다니고, 경복궁에는 전등이 켜졌으며,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이 병원은?광혜원이 세워졌어요. 서재필이 만든 이 신문은?독립신문은 한글로 만들어져 새로운 소식과 사상을 널리 알렸죠. 이런 혼란 속에서도 우리 민족은 정체성을 지키려 노력했어요. 주시경 선생은 우리말과 글을 연구했고, 역사학자 신채호는 '역사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며 민족의 혼을 일깨우는 이 사학은?민족주의 사학의 기초를 닦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