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침략 확대와 국권 수호 운동
20세기 초, 한반도를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의 대립은 결국 이 전쟁은?러일 전쟁으로 폭발했어요.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본격적으로 대한 제국의 국권을 빼앗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고문을 보내 정치를 간섭하더니(제1차 한일 협약), 1905년에는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 이 조약은?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감시 기구인 이 기구는?통감부를 설치했죠.
이에 우리 민족은 거세게 저항했어요. 민영환 등은 자결로 항의했고, 곳곳에서 을사늑약에 반대하는 이 의병은?을사의병이 일어났습니다. 고종 황제는 이 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 비밀리에 특사를 파견했지만(이 사건은?헤이그 특사), 일제의 방해로 실패하고 오히려 이를 빌미로 황제의 자리에서 강제로 물러나게 되었어요. 일제는 곧바로 각 부서에 일본인 차관을 임명하여 내정을 장악하고 대한 제국의 이 조치는?군대 해산을 명령했습니다.
나라를 지키던 군인들은 분노하며 의병에 합류했고, 이로써 의병의 전투력은 크게 강화되었죠. 이들이 바로 이 의병은?정미의병입니다. 이들은 연합 부대인 '13도 창의군'을 결성하여 서울로 진격하는 작전까지 펼쳤습니다. 한편, 다른 쪽에서는 교육과 산업을 발전시켜 실력을 키워야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이 운동은?애국 계몽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어요. 특히 안창호 등이 조직한 비밀 결사 이 단체는?신민회는 학교를 세우고 국외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는 등 장기적인 독립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1909년, 이 의사는?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는 쾌거를 이루었지만, 결국 1910년 8월, 대한 제국은 국권을 완전히 빼앗기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