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정치 운영과 세계관의 변화
고려 말, 요동 정벌을 떠났던 이성계 장군이 압록강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리는 이 사건은?위화도 회군을 단행하며 새로운 역사의 서막을 열었어요. 그는 이 인물은?정도전과 같은 신진 사대부와 손잡고 조선을 건국했죠. 이후 여러 왕을 거치며 나라의 기틀이 잡혔고, 성종 때 마침내 조선의 기본 법전인 이 법전은?경국대전이 완성되어 법치 국가의 면모를 갖추게 됩니다.
조선 초기, 나라를 세운 공신인 훈구 세력이 권력을 잡았지만, 지방에서 성리학을 공부하며 성장한 이 세력은?사림이 중앙 정치에 진출하며 이들을 비판하기 시작했어요. 두 세력의 갈등은 네 차례의 '사화'라는 피바람을 불렀지만, 사림은 서원과 향약을 기반으로 꾸준히 세력을 키워 결국 정치를 주도하게 되었죠. 하지만 사림은 곧 정치적, 학문적 견해 차이로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는 이것은?붕당을 형성하며 서로 경쟁하고 견제하는 정치를 펼쳤습니다.
붕당 간의 다툼이 너무 심해지자, 영조와 정조는 이 정책은?탕평 정치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려 노력했어요. 특히 이 왕은?정조는 규장각을 설치하고 수원 화성을 건설하는 등 조선의 마지막 불꽃을 피웠습니다. 하지만 정조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 어린 왕들이 즉위하면서 몇몇 외척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 정치'가 시작되어 나라는 큰 혼란에 빠졌어요.
한편, 조선은 두 차례의 큰 전쟁을 겪었어요. 1592년, 일본이 쳐들어온 이 전쟁은?임진왜란은 이순신 장군과 이름 없는 의병들의 활약으로 힘겹게 막아냈죠. 17세기에는 북쪽의 만주족(후금)이 침략한 이 전쟁은?병자호란으로 임금이 남한산성에서 항전하다 굴욕적인 항복을 하기도 했어요. 이 전쟁 이후, 청나라에 대한 복수심(북벌론)과 함께, 비록 오랑캐지만 발전된 청의 문물을 배우자는 이 주장은?북학론이 등장하며 새로운 생각의 싹이 트기 시작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