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의 변화와 사회 운동
일제 강점기, 우리 사회는 큰 변화를 겪었어요. 도시에는 공장이 들어서고 인구가 몰렸지만, 화려한 백화점 거리 뒤편에는 농촌에서 밀려난 가난한 사람들이 움막집을 짓고 사는 이들은?토막민 촌이 생겨났죠. 양복을 입은 '모던 보이'와 단발머리 '모던 걸'이 거리를 활보하고, 나운규 감독의 영화 이 영화는?아리랑은 민족의 슬픔을 달래주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농민과 노동자의 삶은 고통스러웠어요. 높은 소작료에 시달리던 농민들은 소작쟁의를 벌였는데, 특히 전남 암태도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암태도 소작 쟁의는 1년간의 끈질긴 투쟁 끝에 소작료를 낮추는 성과를 거두었죠.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들도 힘을 합쳐 파업을 벌였어요. 1929년 원산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원산 총파업은 전국적인 지지를 받은 대규모 투쟁이었습니다.
신분제는 폐지되었지만 차별은 여전히 존재했어요. 특히 백정들은 '저울처럼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며 이 운동은?형평 운동을 일으켰어요. 또한 어린이의 인권을 존중하자는 이 운동은?소년 운동(방정환), 여성의 해방을 외친 이 운동은?여성 운동(근우회)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일제가 우리 역사를 왜곡(식민사관)하며 민족정신을 말살하려 하자, 우리말과 역사를 지키려는 노력도 치열하게 전개되었어요. 이 단체는?조선어 학회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만들고 우리말 큰사전 편찬을 시도했죠. 역사학자 박은식은 '나라의 형체는 없어져도 정신(魂)은 살아있다'고 외쳤고, 신채호는 민족의 주체적인 역사를 강조했습니다. 한편, 백남운은 한국사가 세계사의 보편적인 법칙에 따라 발전했다는 이 사학은?사회 경제 사학을 통해 일제의 '정체성론'을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